탄소배출권 거래제, 독인가 약인가?
한국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탄소배출권거래제도(Emission Trading System, ETS)는 이미 한물간 제도로 보인다. 국제적으로 탄소배출권 거래가 다자간 체제에서 양자간 체제로 구조적인 변화를 하고 있고, 이론적으론 우수하지만 수반되는 감시ㆍ행정ㆍ거래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 현실적으로 배출권 거래에 적용 가능성이 낮은 경매식 거래제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매식 거래제도는 지나치게 자유시장 경제이론에 근거하고 있어 온실가스 배출을 실제로 감소시키는 국민이나 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이 가는 것이 아니라, 탄소 브로커인 금융사가 탄소 파생상품으로 돈을 벌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포기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환경 고문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등이 거래제를 반대하고 있다. 한때 탄소거래제도 도입을 검토했던 미국 공화당 매케인, 그램, 스노 등 많은 정치인이 결국 거래제도에 등을 돌리며 미국도 거래제 도입을 포기하게 된 데는 오바마와 벌이는 정쟁과도 관련이 있지만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탄소배출권의 원가는 톤당 10센트에서 30유로까지 천차만별이다. 다른 산업 부문과 국가에서 생산되어 원가가 전혀 다른 탄소를 하나의 배출권 거래제도에 묶어 놓는 것 자체도 심각한 오류다. 2009년 인터폴이 현 거래제도에 대해 조직범죄가 관여할 개연성이 높은 문제투성이 제도라고 경고한 이래 특정 국가와 기업 간 불법적 결탁과 온라인상에서 배출권 절도 등 범죄가 이미 수 차례 발생하고 있다. 미국 월가의 지나친 상업주의와 유럽 마피아 범죄 조직이 거래제도 허점을 파고들어 현재 유럽거래소 거래를 중지시킬 만큼 대규모 악용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인도네시아, 브라질, 멕시코,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페루 등과 양자간 체제를 설립하고 각 국가에서 산업별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고 있다. 작년 여름에는 중국과도 탄소배출권 사업을 위한 양자간 협약을 체결하였다. 일본 종합상사 마루베니가 구매한 일본ㆍ인도네시아 산림전용방지 탄소배출권(REDD)과 도쿄전기가 베트남에 핵발전소를 건설해 주며 획득하게 될 탄소배출권이 대표적인 예다.
다자간 체제에서는 다양한 국가와 산업 부문이 탄소 시장에 관여하므로 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는 거래제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만, 양자간 체제에서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서 탄소배출권을 구입한 후 감축 실적을 인정 받기만 하면 되므로 거래제가 불필요해진다. 양자간 체제에서는 다자간체제의 거래에서 필요한 증권거래소 형식의 배출권 거래제도 없이도 장외주식거래(OTC)제도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면 탄소브로커를 배제한 채 정부 감독하에서 배출권 가격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저렴하고 가격변동이 적은 배출권을 기업에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부가 규제하는 양자간 체제하에서 저렴하고 가격 변동 폭이 최소화된 탄소배출권이 제공된다면 산업계는 중장기적 계획하에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적절한 정책과 규제가 보장된다면 화석에너지 대비 신재생에너지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에 도달 하는 것도 꿈꿔 볼 만하다. 미래 에너지 전쟁에 대비해 청정에너지,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미국, 중국, 일본이 앞을 다퉈 양자간 탄소배출권 확보에 투자하고 있는 지금 한국 정부가 한물간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도입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지속한다면 불행하게도 녹색성장이라는 국가적 목표 성취는 먼 훗날에나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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